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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좋아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손에 꼽히는 자이언트와 함께 한 추억의 편린이라고 해두겠다.
어쨌든... 그 덩어리 녀석과 나란히 서있을 수 있는 이유라면 이유가 될 테니까.
때는... 밀레시안으로서 적응하고 조금 더 지났을 즈음.
슬슬 배에서 밥을 달라며 울고 있는 와중이었기에 간단한 식사 해결을 위해서라도 의뢰를 받아야만 했다. 당장 던전으로 찾아간다고 해서 제 식비를 충당할 만큼의 벌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밀레시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한 걸음 건너에 바로 있으니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제 앞에서 무어라 떠들고 있는 녀석의 말은 가볍게 무시한 채 의뢰서나 달라며 손을 재촉했을 때 그제야 아차 싶었다. 조금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볼걸.
"감사합니다, 밀레시안 님!"
"아니, 잠깐만!..."
종이에 떡하니 적혀있는 '장소 : 발레스'라는 문구 탓이다. 밀레시안이라면 뭐든 해낼 것이란 생각 때문인지 자신이 엘프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는 모양이다. 눈치 하나 보지도 않고 제 손에 의뢰서와 포장된 물건을 쥐어주자마자 의뢰인은 쏜살같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눈앞에 있는 종이쪼가리의 앞뒤를 돌려보아도 다른 장소는 적혀있지도 않았다. 고작 물건을 전달해 주는 일이기에 문제 될 것이 있겠냐만은 꺼려질 수밖에 없는 장소였다. 아무리 상대가 자이언트라고 해도 겁이 없는 자신이고, 하물며 겁이 난다 하더라도 배짱이라면 자신 있었으니. 발레스의 눈을 으스려 밟아가며 그들의 위에 자신이 있음을 뻔뻔하게 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와 긍지를 무시할 생각도 없었고 자신이 겁에 질렸음을 표할 필요도 없었다. 좋게 둘러대어 이번 의뢰를 거절하고자 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자신을 한참 가리는 그림자에 고개가 치켜들어졌다.
"밟을 뻔."
"얼씨구."
마운틴. 자이언트를 지인으로 뒀다고 한다면 필리아가 뒤집어지려나 싶지만 자신에게도 손꼽히는 녀석 중 한 명일 뿐이다. 어떤 연유로 서로와 친해졌다고 하기엔 당장 시선이 부딪혀 주먹이 날아갈 수 있는 팽팽한 긴장선이라 그런 식으로 표현할 것도 없었다. 반사적으로 가지고 있던 종이가 구겨지긴 했지만 건너편의 자이언트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그 종이를 빼앗아 들었다. 뒤늦게나마 단어 하나에 시선을 빼앗겨 자이언트가 자신의 코앞까지 오는 걸 느끼지 못하고 낯빛까지 창백하게 질렸음을 눈치채기도 했다. 제 모습을 본 남자는 '아~'하고 탄식을 뱉고 입꼬릴 틀어 올려가며 이야기했다.
"수고해라."
"놀리냐?"
"그럼 뭐, 오붓하게 같이 가달라고?"
그건 나도 싫다. 안 그래도 피곤한 의뢰인데 일일이 녀석까지 신경을 뻗쳐가며 갈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감정을 가득 실어가며 종이를 낚아채고선 쯧, 하고 짧게 혀를 찼다. 어차피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생각은 없었지만 괜히 시작도 전부터 기분만 잡친 것만 같다. 벌써부터 끌어안는 불안감들은 이쯤에서 갈무리해 두고 발을 옮기는 것이 좋겠다. 아무리 문게이트가 밤낮 가릴 것 없이 활성화 된다곤 하지만 가능하면 사서 고생을 하더라도 멀리 돌아가고 싶었다. 추위를 향해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엘프라니.
"왜 따라와."
"가는 길인데. 내가 내 집에 가는 게 이상해?"
"미친 새끼."
떨어져서 걷던가. 자이언트가 흔치 않은 탓인지 온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데도 녀석은 아랑곳 않았다. 이래저래 신경 쓸 위인은 아니란 걸 잘 알지만 이번은 경우가 다를 뿐이다. 이런 식으로 시선을 받고 싶진 않다고. 뜻하지 않은 동행의 시발점이긴 했지만 어쩐지 안도감이 들긴 했다. 덤덤한 표정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도 없는 녀석이지만... '녀석은 다르다.'라고 생각한 탓 일터다.
...
발레스. 적지 않게 와 본 곳이라 그렇게 위압감이 있진 않았지만 지독한 추위엔 익숙해질 생각도 없나 보다. 코 끝이 아리고 살이 베일 추위 속을 제 발로 다시 찾아올 줄 누가 알았으랴. 근육이 뭉쳐있는 놈들이 아니고서야 이런 추위에서 버틸 리가 없었다. 당장 제 옆에 있는 녀석은 가슴이고 나발이고 죄다 까댔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하게 걷고 있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안 춥냐?"
"추우면 춥다고 미리 말을 해줬어야지, 덩어리 새끼야."
안 그래도 더러운 성격이 한층 더 날카로워져 있는 탓에 잔뜩 털을 세운 고양이 같은 반응을 보였다. 머리 위로 하얀 쓰레기가 쌓여가며 이 추위가 언제까지 이어지나 천근과 같은 다릴 옮기다, 눈보라 사이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마을의 형태에 절로 동공이 좁혀지는 것은 본능에 가까웠다. 하얗기만 한 마을 안에서 번뜩이는 눈들이 있을 것만 같은 짐승의 우리와 다를 것 없는 곳. 발레스가 눈동자에 담기기 시작하자 옅게 앓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대충 추위 탓이라고 느낀 것인지 그에 대해 무어라 말이 얹어지진 않았다.
"여기 어딘지 알면 안내 좀 해."
품에 접어 넣었던 의뢰서를 그에게로 대충 밀어 넣었다. 제 머리 위에서 무어라 말이 들려오는 것 같았는데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단순히 바람소리가 너무 컸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당겨오고 싶었다만 당장 자신은 주변에 그를 제외하고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에 온갖 신경이 꽂혀있었다. 당장이라도 제게 발길질을 하든 몸으로 밀치려들든 추위를 잊게 만드는 묵직한 경직감이었다. 제기랄, 역시 발레스 같은 곳은 오는 게 아니었다. 그런 후회만을 속으로 읊을 때 즈음 어깨 위로 턱 하니 얹어지는 손에 다급하게 쳐내보았다. 그 반응에 조금은 놀란듯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마운틴이 있었지만 그렇게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차라리 속 시원하게 비웃었더라면 그냥 넘겼을 텐데 그는 이쪽이라며 먼저 걸음을 옮겨갔다. 자신의 꼴이 얼마나 우스운 모습을 보였으면 아무 대꾸도 안 할까.
"너 그래서 돌아갈 수는 있겠냐? 날도 어두워졌어."
"..."
"야, 듣고 있어?"
"뭐?"
"아까부터 정신 빼놓고 있네."
한 발자국을 내딛고 주변을 살피며, 한 발자국을 내딛고 다시 주변을 살핀다. 꼭 이곳에만 오면 이렇게까지 굴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귀찮은 행동이 많아진다. 아무리 자신이 줏대 높은 녀석이라고 한들, 그들의 손아귀에서 부서지는 것도 한순간인 것도 사실이다. 한 번의 방심이 어떤 결과를 부를지 모를지 모르는 이 추위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도망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공간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당장 이 자리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곤 눈앞에 있는 녀석뿐이라는 점에서 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이 숨마저도, 그가 있었기에 허락되는 것만 같은 기분을 안았다.
눈을 피해 숙소로 들어섰다. 방까지 대체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았다. 계속 멍 치고 있는 모습에 제발 정신 좀 차리라며 으르륵거리는 녀석에 신경 쓰지 말라며 대꾸하긴 했으나 자신의 심심치 않은 반응 탓인지는 몰라도 돌아오는 소리는 없었다. 겨우 휴식을 취하는 것은 그도 마찬가지인 듯 식사도 전에 침대에 몸뚱이부터 눕혀두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시선이 다시 문쪽으로 향해버려서 그 뒤는 무엇을 하는지까진 모르겠다.
"밥을 쳐드시든지, 주무시든지 하나는 하시죠? 도하님?"
"신경 꺼. 알아서 할 거니까."
"너 아까부터 열심히 쳐다보는데 그런다고 해서 문이 부서질 것 같냐. 가서 주먹질이라도 해야 부서지지."
"농담할 기분 아니야."
"농담 같냐? 차라리 가서 주먹질이라도 하라고. 그래야 그 좆같은 기분이 풀리지."
순간 할 말을 잃어서 멍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혀나 삐죽 내밀어가며 저를 약올리려는 건지 뭔지 의도 없는 놀림이 이어졌지만 도리어 제게선 웃음이 피어버리는 게 어이없기도 했다. 그것은 나쁜 기분을 불러일으키지도 않았고 오히려 깜깜했던 앞이 트는 것만 같아서 개운했다. 굳어있던 다릴 움직여 그에게로 다가가 주먹을 움켜쥐곤 힘껏 배에 내리꽂았다. 그렇게 아플 것 같지 않은 주먹이었고 비웃음을 자아내는 행동이 되었지만 욕이나 지껄이는 그의 모습엔 안도감이 묻어있다고 느꼈다.
"배 안 고프냐."
"그 솜주먹 비비면서 못 느꼈냐? 등가죽이랑 뱃가죽 붙은 거."
...
"내일은 필리아로 돌아가냐."
"필리아 말고, 던바튼. 아직 볼 일이 좀 남았어."
"바쁘신 영웅 나으리 납셨다."
"뒤진다, 진짜."
식사를 마치고 쉬이 떠드는 대화 중 투닥거리는 것은 서로에게 익숙할 뿐이다. 평범한 안부인사가 더 소름 돋는 일인 것처럼. 그래도 마냥 날을 세우며 경계태세에 있는 자신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배려라고 느낀다면 그건 그것대로 소름 돋는 일로 느껴진다. 이미 라데카가 훤하게 보일 시간인 걸 감안하면 둘 다 지쳐 침대에 몸을 눕혀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상태임에도 정신이 또렷한 것인지 여전히 쌩쌩하기만 했다. 그것도 오래가지 않아 자신은 이만 자겠다며 손을 휘휘 젓는 그에게 '어어, 자라.' 정도로 심심한 반응을 보낸 이쪽은 괜히 닫혀있는 창밖으로 눈보라나 지켜보는 정도였다. 자신만 있었더라면 위험을 도사리며 보냈을 새벽일테지만 바로 등 뒤에 자리한 자이언트 하나 덕분인지 허여멀건 쓰레기들 안에서 선명한 눈빛들이 번뜩이진 않았다. 젠장, 이곳에만 오면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약함에 애꿎은 이빨을 간간히 까득였다.
자이언트가 그렇게 나쁘기만 한 존재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필리아 내에서 돌고 도는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종족에 대한 혐오와 편견이 가득한 엘프들의 입에서 전해지는 것이라 결국 같은 소리이고 이러한 일은 비일비재한 하기에. 그렇다고 엘프들의 이야기를 안 믿는 것도 아니었으니. 어중이 떠중이한 마음과 긍지는 결국 '내가 본 것만 믿는다.'라는 것. 그 결과, 자이언트는 결국 엘프를 보면 우리들과 똑같이 적대시할 뿐이다. 그것이 무슨 이유가 되었든 엘프들의 비명을 듣고자 했다. 붉어진 싸움터엔 화살이 빗발치거나 거친 땅의 울림이 들렸다. 모두의 비명소리가 들렸고, 싸움에서 진 쪽은 쓰러졌다. 그것이 엘프인지 자이언트인지도 모른 채 어느 편의 승리랄 것도 없이 결국 강한 자가 이긴 싸움이었다. 환호한 자는 어느 쪽이었지. 일단... 나는 아니었다. ㅡ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의 난 그 자리에서 뼈 아픈 패배를 맞이했었다.
패배의 고통을 알기에 자이언트가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적진 안에서 그들의 손에 언제든 쓰러질 수 있다 생각하면 잠들 수 없는 밤이기도 하고, 인정하긴 싫지만 힘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도 아니다. 괜한 생각이라는 걸 알지만 자겠다고 누운 녀석이 자신에게 손을 뻗어 목이라도 꺾겠다 군다면 불가항력으로 당할 일인 것을. 무거운 숨이 뱉어졌다. 유난히 지금의 새벽이 길게 느껴졌지만 심정으론 팔라라가 떠오르는 걸 바라보고 싶진 않았다.
...
생각보다 멀쩡한 발걸음 탓인지 그의 표정이 볼만했다. 왜 멀쩡하냐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밀레시안의 몸으로 하루이틀 안 잔다고 문제 될 것은 없겠지만 새벽 내내 작은 소리만 들려도 예민하게 굴던 것을 얼핏 눈치채고 있던 모양이다.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편해질 방법이라면 당장 발레스에서 벗어나 온천에라도 찾아가는 게 가장 좋다며 얼버부리고선 숙소에서 빠져나왔다. 눈보라까진 아니었지만 여전히 눈이 내리는 곳이었다. 날이 밝으니 눈이 부실 지경이라 미간이 좁혀졌지만 절경이라면 이만한 곳도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나쁘지 않네."
"피곤해 보인다 생각은 했는데 이젠 돌아버린 거야? 미쳤어?"
"왜 칭찬해 줘도 지랄이지?"
자이언트 사는 곳에서 자이언트만 없으면 딱이란 소릴 할 수는 없잖아.
사박거리는 소릴 내며 다시금 느껴지는 추위를 온몸으로 받아낼 즈음, 그가 잠시 들렀다 올 곳이 있다며 자릴 벗어났다. 보폭은 자신보다 훨씬 크면서 걸음 속도는 왜 자신보다 한참 느린지. 당장 먼저 출발해 버리면 분명 자신이 던바튼에 먼저 도착해 버릴 것이었다. 별로 상관없나. 그런 생각을 이어갔던 것도 잠시, 어제와 같이 느껴지는 시선과 동시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에 귀가 짐짓 까딱였다. 어느새 그 많은 눈동자가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 "엘프?"
"허, 이건 또 뭐야."
데자뷔 마냥 단숨에 팔라라를 가리며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아랑곳 않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차라리 익숙한 외관이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불안감이 단번에 엄습해 왔다. 털이 쭈뼛 서기도, 손안에 쥐지 않은 스태프의 빈자릴 손톱이 파고들었다. 침착하게 대응하면 방법은 없는 것도 아니니 떨리는 몸을 애써 진정시키며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여차하면 당장 주변에 널린 눈이라도 얼굴에 칠해주면 시간은 벌 수 있겠지 싶다.
- "네가 그 엘프인가?"
- "어떤 놈인가 했더니 별 거 아니잖아."
"뭐야. 나한테 왜 이리들 관심이 많아?"
- "마운틴이랑 같이 다닌다고?"
"같이? 내가 니들 같은 덩어리랑 같이 다닐 엘프로 보여? 씨발, 엘프가 니들보다 작다고 긍지도 좆만 한 줄 알아?"
우악스러운 힘과 함께 멱살이 쥐어잡히며 몸체가 앞으로 쏠렸다. 목이 졸릴 지경으로 들려 아슬하게 발끝만 땅에 붙어있는 것이 그나마 숨통을 덜 조여서 다행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녀석의 손목을 잡아 비틀고 다릴 걷어차보아도 그다지 소용이 있는 것 같진 않았다. 한 대 맞아 줄 작정이긴 했지만... 괜히 안 좋은 기억만 되살아 날 것 같았다.
"지금 뭐 하자는 짓이냐."
"... 보면 몰라? 덩어리들이 나 하나 말빨로 못 이겨서 무식하게 주먹부터 들이밀잖아."
참, 비참하게도. 녀석의 고갯짓에 목을 조이던 옷이 놓아졌다. 난 그렇게 발버둥 쳐도 꼼짝 안 했는데 말이지. 제 멱살을 잡아 쥐던 녀석의 면상에 침이라도 뱉었으면 덜 열받았을까 싶었을 즈음, 옷을 대강 털어내며 정리하자마자 걸음을 돌려 다가온 마운틴에게로 향했다. 똑같이 옷의 멱살을 쥐어 당기고선 눈알만 번뜩였다.
"어금니 꽉 깨물어."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솜방망이 취급을 해도 결국 같은 수련을 다한 밀레시안이라 그 충격을 보여주듯 입술이 터져 허여멀건 눈 위로 붉은 자국을 떨구고 있었다. 엄지를 말아쥐었던 주먹을 슬슬 털면서 개운한 숨을 뱉고 나면 괜히 그의 신발 위를 짓밟으며 치켜든 고개를 더욱 떳떳하게 굴었다.
"개새끼들 교육 좀 잘 시켜. 주인이란 새끼가 대체 어떻게 교육시키면 입질 밖에 할 줄 몰라?"
"하."
느지막이 짓밟던 신발을 놓아주며 뒤로 물러서자 손바닥으로 입가를 닦아낸 그의 걸음에 힘이 실렸다. 눈길을 가르고 자이언트들이 무리로 향했다. 누구라도 주춤거릴 법한 위엄을 안고서. 자신이 열받은 것을 더해 일부러 속을 긁을만한 소릴 한 것은 사실이지만 저런 반응까지 보일 줄은 몰랐는데, 덕분에 좋은 구경을 한 것도 같다. 자이언트가 엘프를 위해 동족을 저렇게 저력을 다하고 있다니. 그냥 엘프에게 얻어맞은 쪽이 자존심 상해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슬슬 올라가려는 입꼬릴 가리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르겠다. 묵혔던 무언가가 사라지는 것 같다고 해야 할지.
...
우린 무사히 던바튼으로 돌아와 평화로운 식사를 즐기는 중이다. 자신도 엘프 축에서 적지 않게 먹는다고 생각은 했는데 자이언트 상대론 어림도 없었다. 벌써 몇 접시 째 비우고 있음에도 여전히 배가 고파보이는 모습이라 어깨나 으쓱이며 먹는 모습을 질린다는 듯 보는 게 다였다. 피곤을 푸는 것도 식후경이라고, 얌전히 군말 없이 부족함 없는 식사를 보태었다. 녀석과 같이 하는 술 한 잔은 발레스의 눈보다도 시원하게 느껴진다.
"이번 의뢰로 받은 비용을 하루 식대에 다 쓰겠네."
"발레스로 한 번 더 가던지."
"마조 새끼냐? 나한테 또 얻어맞고 싶어서?"
그 개운함은 무엇에 비교할 수도 없었고 말이다.
供鳴ブラッド :: 공명 블러드
幾千の夜を駆け抜けて 朱く染まる月に吠える
たとえ孤独に流されても 蜘蛛の糸を切って
届くはずのない声ならば せめて祈りの餞を
この身に宿る魂へと 深く共鳴する
수천 개의 밤을 달려 빨갛게 물든 달에 짖는다
설사 고독에 휩쓸려도 거미줄을 자르고
닿을 리 없는 목소리라면 적어도 기도의 전별(전갈)을
이 몸에 깃든 영혼에 깊이 공명한다
https://youtu.be/6lOSZyshUFE